토요일, 4월 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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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 빨아 매출 3200억” 한전 관둔 이 남자 ‘500원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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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린토피아 이범돈 사장. [사진 크린토피아]1200원에 와이셔츠를 세탁해 지난해 연 매출 3200억원을 기록한 기업. 지난해 한국프랜차이즈대상에서 대통령상 표창을 받은 크린토피아다.

지금은 동네에 매장 한 개씩은 있을 정도로 알려진 프랜차이즈가 됐지만, 출발은 한 섬유업체의 작은 부서였다. 그마저도 만성 적자에 허덕여 사업을 접을 위기까지 몰렸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사업을 국내 최대 세탁 프랜차이즈로 키워낸 건 모기업 창업주 이범택 회장의 동생 이범돈(60) 크린토피아 사장이다.

아내 반대에도 한전 관두고 세탁업으로연내 크린토피아 가맹점 수를 3000개(현재 2872개)까지 늘리겠다는 이 사장은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정에 빨래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드라이클리닝뿐 아니라 수건과 속옷 등 생활빨래까지 다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세탁 후 개어주는 ‘워시앤폴드’와 수거ㆍ배달 서비스 확대가 핵심이다. 모델은 세탁물을 접수하고 돌려주는 기존 세탁편의점에 코인빨래방(코인워시)을 들여놓은 ‘멀티숍’이다.

크린토피아 멀티숍 부평래미안점. [사진 크린토피아]실제 부평래미안점은 세탁편의점에 코인빨래방과 수거ㆍ배달 서비스를 도입한 뒤 연 매출이 1억원에서 2억6000만원까지 늘었다. 매출 절반 이상이 코인빨래방에서 나온다.

이 사장은 “멀티숍은 주로 무인으로 운영되는 코인빨래방과 달리 점주가 상주하기 때문에 워시앤폴드 서비스가 어렵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수거ㆍ배달 서비스 역시 생산거점공장 135개를 기점으로 전국 2872개 점포를 하루 3번 배송차량이 돌고 있는 독보적인 물류시스템이 있는 만큼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크린토피아의 모태는 1992년 신설된 보고실업(1986년 창립)의 사업본부다(1997년 독립법인으로 분리). 이범택 회장은 신사업으로 시작한 세탁사업이 적자에 시달리자 사업을 접으려고 했지만, 이 사장이 형을 말렸다. 1년 전 형을 따라 일본 세탁시장을 둘러봤을 때 “한국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당시 한국전력공사에 재직 중이던 이 사장은 4일 연차휴가를 내고 방문한 일본에서 대형화ㆍ자동화된 세탁공장을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터였다. 결국 1993년 아내의 반대에도 회사를 그만두고 적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와이셔츠 세탁비 2500원에서 500원으로

크린토피아 코인워시 매장. [사진 크린토피아]그가 합류한 뒤 파격이 시작됐다. 당시 동네세탁소에선 한장에 2500원 하던 와이셔츠 세탁비를 500원(현재 1200원)으로 확 낮춘 게 대표적이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40만~50만원이던 상황에서 와이셔츠 세탁비는 너무 비쌌다. 일본 세탁업소의 세탁물 50%가 와이셔츠지만 한국은 1.5%에 그친 이유였다.

지금은 크린토피아 입고량의 25%가 와이셔츠다. 이 사장은 ”와이셔츠는 마진을 남기지 않는 유인상품 성격이 강하다“며 ”와이셔츠를 맡기면 양복도 맡기게 돼 있다“고 했다.

와이셔츠와 함께 크린토피아 혁신 품목으로 꼽히는 건 운동화와 이불이다. 주로 집에서 세탁하던 운동화와 이불을 세탁소로 불러들인 것이다. 크린토피아 매출의 10%는 운동화에서 나온다. 이런 혁신 끝에 크린토피아는 7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멀티숍도 코인빨래방에 대한 이 사장의 오랜 고민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2009년 서울 양재동에 멀티숍 시범사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코인빨래방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코인빨래방이 성업이에요. 그런데 왜 한국엔 코인빨래방이 없거나 열어도 다 문을 닫을까. 핵심은 주차장이었죠. 손님이 주차하고 셀프 빨래를 해야 하는데 한국은 땅도 좁고 임대료가 비싸서 주차장은커녕 세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공간조차도 없죠. 몇 년을 고민해도 결론을 못 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문제를 원샷으로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죠. 세탁편의점에 같이 묶어놓자는 거죠. 우리는 어차피 점주가 상주하니까 기다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멀티숍은 현재 약 800개로 늘었다.

앱 클릭 몇 번에 겨울옷·이불 보관도크린토피아의 도전은 계속된다. 올해부터는 겨울옷이나 이불 등을 세탁한 뒤 3개월(기본요금 9000원)부터 9개월까지 보관해주는 ‘세탁ㆍ보관서비스’를 시작했다.

세탁물은 세탁 후 부직포로 포장해 롯데 글로벌로지스가 관리하는 의류 전용보관센터에 보관한 뒤 기간이 끝나면 롯데 택배를 통해 발송된다. 3월 중 출시 예정인 크린토피아 애플리케이션에서 원하는 보관 기간이나 수거 방식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앱에는 점주들에게 수거ㆍ배달 최적 경로를 알려주는 AI 기능도 탑재했다. 이를 통해 수거ㆍ배달 비율을 현재 15%에서 연내 30%까지 확대하고, 3년 안에 80%까지 늘릴 계획이다.

한때 3D 업종 취급을 받았던 세탁업이지만, 성장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이 사장은 강조했다.

“사실 드라이클리닝은 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에요. 비즈니스 캐주얼이 늘고 스타일러 같은 가전제품이 등장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으로 생활빨래 시장은 계속 커질 겁니다. 특히 시간이 없는 맞벌이 가정은 이 서비스를 한 번 맛보면 벗어날 수 없어요. 집에서 하는 생활빨래를 우리가 어떻게 끌어낼 것이냐가 관건이죠. 그걸 우리에게 맡겨주면 수거부터 배달까지 다 해주겠다는 게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한국 드라이클리닝 시장은 약 1조7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사장은 “10년쯤 후엔 가정의 생활빨래 시장이 드라이클리닝 시장을 넘어설 수 있다”고 했다.